말씀영상

17년 5월21일 주일낮설교 본문
[엡4장1-6절 부르심에 합당한 공동체 .pdf]

본문 : 엡4장1-7절 / 제목 : 부르심에 합당한 공동체

 

엡 4 장 1-6 절 부르심에 합당한 공동체 오늘은 다시 에베소서 말씀을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 에베소서 3 장 14-21 절까지 말씀을 살펴보면서 사도바울의 중보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세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 도하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1)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는 것
2) 그리스도께서 늘 너희 마음에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을 달라
3) 성도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길이,높이,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게 해달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 시기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남편이나 아내를 향해서든, 자녀를 향해서든 아니면 교회의 지체들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든… 이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행위, 즉 하루의 몇 번을 기도하고, 몇 시간을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어디서 기도하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바른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간 사도바울이 기도한 내용은 우리에게 중 요한 기도의 제목을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4장으로 넘어게가 되는데요. 에베소서 말씀은 크게 둘로 나뉘어집니다.
1-3 장, 그리고 4-6 장까지 말씀입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1-3 장까지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 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었습니다. 또 하반부에 해당하는 4-6 장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권면이 나옵니다.
1-3장은 교리, 이론이라면 4-6장은 실제적인 삶에 대한 가르침 그런 점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두 구절이 있는데 전반부를 마무리 하는 3 장 21 절과 후반부를 시작하는 4 장 1 절 말씀입니다.

이 두 구절은 전반부와 하반부를 이어주는 교각역 할을 합니다.

먼저(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 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특별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통로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교회 안에서(엔 에클레시아)이고,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엔 크리스토스 예수스)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서만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진 교회를 통해) 먼저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음 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 이름은 모든 만물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모든 권세 위에 뛰어난 권세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는 기도할 때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선포할 때, 병든 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가고, 뿐만 아니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영 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 은 교회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원하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 해 영광을 받으시고, 또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 즉 우리의 연합을 통해 영광을 받 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 한 통로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행 20:28)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 이 자리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대속하셨듯이~ 이 자리에 이렇게 우리가 모인 것은 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해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세워진 교회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피로 사신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 해 살아가야 하듯이~ 이렇게 모인 우리 모두, 즉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 모인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이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참된 복음을 선포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 그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교회 건물이 크냐 작으냐~ 아니면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하느 냐 아니냐~ 아니면 성도수가 많으냐 적으냐~ 이런 것으로 교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느냐 아니냐로 교회의 교회됨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느냐~ 아니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사느냐~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값주고 사신 교회를 함께 세우는 사람이 냐 아니면 허무는 사람이냐~ 이것을 통해 성도도 참 성도인지 그렇지 않은지 구별할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뛰어난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를 바라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만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의 5 년간의 목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교회)

자 그리고 이제 4 장으로 넘어가면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말씀이 바로 1 절입니다.
4장부터6장까지는 구원받은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더 나아가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 절에 보면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면한다” 고 말합니다. 4 장, 즉 후반부를 시작하는 첫 단어는 권한다. 간청한다. 요구한다… ‘파라칼로’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은 너희들 그리고 에베소 교회 를 향해 권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권면이 무엇인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은 하반부에 나오는 우리가 삶속에서 실천해야 할 전체적인 내용 을 아우르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4-6 장까지 나오는 모든 것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 하라는 말의 세부지침에 해당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이 무슨 말 일까요? 3 장 마지막 절에서 살폈듯이,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함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행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그 첫번째가 ‘하나’되는 교회를 말씀합니다.
그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왜 교회는 하나 되 어야 할까요? 3 절을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모든 사람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고 높아지려고 했던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서 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여전히 바벨탑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들은… 모두 바벨탑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벨탑을 쌓으면 쌓을수록 이 땅에는 전쟁과 싸움 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흩어짐입니다. 모든 사람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흩어짐의 치유가 되는 사건이 사도행전 2 장에 나오는 데..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양한 언어들이었지만, 한 가지 일 즉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을 말함’으로 나타났습니다(행 2:11).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하나 되 게 하심’의 통로가 됩니다. 그 이후부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엡 2:14-22). 예수님의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 됨의 역사가 하늘 본향을 향해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은총입니다. 주께서 이루시는 우리의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입니다 (빌 3:20,21). ‘교회의 일치’ 곧 ‘하나 됨의 역사’가 곧 구원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보면 아버지의 사랑 안에 둘째와 첫째가 하나 됨이 축제의 클라이막스를 이룹니다. 그 아버지는 두 탕자를 둔 아버지였습니다. 집을 뛰쳐나간 둘 째가 그 하나요. 집에 머물기는 했으나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 을 모르고 있었던, 그래서 불만을 품고 살고 있던 큰 아들이 또 하나 였습니다. 인간 아버지 이삭은 두 아들에게 갈등과 불화의 불씨를 제공했 습니다(창 27 장).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서로 등을 돌린 두 아들, 두 탕자들이 끝내 하나 되게 하십니 다(눅 15:11-32). 하나 되게 지음 받았는데 둘이 됐다면, 그것 자체가 불행입니다. 그 불행의 극복은 ‘하나 됨의 회복’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이 시간,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일 수 있 는 이유가 무엇때문일까요? 연령도 달라,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학력, 소득수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한 자리에 모 일 수 있느냐 말이죠. 세상의 모임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같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모인다든지, 아니면 같은 취미를 가지고 모인다든지, 같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인다든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모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않잖아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교회는 모일 이유보다 모이지 못할 이 유가 훨씬 더 많습니다. 만일 우리가 모이지 못할 이유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절대 모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맞지 않는 이유~ 서로가 다른 이유, 서로 약점을 생각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생 각한다면~ 우리는 절대 모일 수 없습니다. 교회 밖에 모이기 편하고 좋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여야 할 이유가 없다 할지라도 모이기가 더 힘들 어 져도…교회는 모여야 합니다. 왜 모여야 할까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오늘 본문 3 절을 보세요. 모일 수 없는 우리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내 노력이 아니 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고 계획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일 때 마다 우리는 그냥 모여지지 않습니다. 모이다 보면, 서로 삶을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아 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 절을 보면 우리가 모일 때 어떻게 모여야 하는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모여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이 뭐에요? 빌립보서에 보면 겸손은 주님의 마음입 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거에요.” 나는 저 사람도 많이 배웠어, 나는 저 사람보다 잘살아 나는 저 사람보다 능력이 많아~ 이런 마음으로는 절대 우리는 모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십시오. 상대를 존중하십시오. 군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자신이 겸손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겸손은 사라진다. 이 말뜻은 나는 겸손한 사람이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 람은 더이상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에요. 즉 겸손은 늘 자신이 부족하다는 그 마음에 있다는 겁니다. 또 우리는 모일 때마다 온유함으로 모여야 합니다. 온유함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뭔가 부드러움이라고 생각합 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훈련되 어진 모습’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본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한 사 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합니다. 어떤 사람은 느긋합니다. 어떤 사람은 칼같이 맺고 끝는 것이 정확한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우유부단하기도 합니다. 만일 본성대로 우리가 모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뿐 이고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온유함’으로 모여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다듬어져 가는 모습~ 내 본성을 죽이고 예수그리 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훈련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말이죠. 순간 순간 내 본성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우리는 말씀으로 나 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세 번째 말씀하시는 ‘오래참음’이 필요 합니다. 저는 ‘오래참음’이라는 말을 볼 때 마다 참 은혜가 됩니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라는 말이 붙어 있잖아요. 한 두번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랜 참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랜 참음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는 심판받지 않고 구원에 이르 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하는데 하나님께서 한 두번 참으시다가 심판 하신다면 이 자리에 남아 있을 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 입니다. 또 우리 부모님의 사랑이 그러하잖아요. 자식을 낳고, 그 자녀가 장성하여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 부모들은 오래 참으며 자녀를 양육합니다. 말안듣고, 부모님께 대든다는 이유로 만일 자녀들을 포기하고 버린다면 아마 이 세상에 고아가 아닐 자식은 없을 겁니다. 부모의 오래 참음으로 자녀들은 장성한 성인이 될 수 있는 것 이죠. 만찬가지입니다. 성도와 성도 간에도 바로 이 오랜 기다림…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변화되어져 가는 과정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 줘야 합니다. 인내해 줘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변화되어져 가는 과정을 끝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우리 모임 안에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내 기준으로 보면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인거 죠. 내 생각과 다른 거에요. 하지만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참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본성적으로 상대방에게 잘못할 수도 있지만 때론 어떤 상황속에서 어떤 일을 하다보면 사람은 실수하기도 합니다. 용납은 바로 그 사람의 실수를 함께 짋어지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네 책임이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그 사람의 실수도 잘못도 함께 짊어지는 것~ 이것이 용납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 보다 비판하는데 익숙합니다. 칭찬은 마음먹고 해야하지만 비판하는 것은 마음먹지 않아도 얼마나 그냥 술술되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모일 때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난하기보다 칭찬해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칭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 니다.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교회가 가져야 할 모습, 교회가 간직해야 할 추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하면 가장 먼저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앞으로 우리교회를 추억할 때마다 늘 성도들을 섬기고 겸손히 맞아주셨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들이 먼저 떠올랐으면 좋겠고, 또 말 한 마디라도 늘 힘이 되어주었던 성도들의 그 따스함이 떠올랐으면 좋겠고, 내가 잘못하고 실수해도 오래참아주고 용납해 주던 그런 성도 들이 떠오르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이 자리에 우리 표성훈 집사님이 계시는데요. 우리 표성훈 집사님이 어린 시절 교회에서 장난을 많이 치셨데 요. 얼마나 장난이 심했는지~ 하루는 교회에 갔는데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선생님이 돈을 주 시면서 이걸루 뭘 좀 사먹으라고 하시면 교회 안와도 된다고 하셨데요. 그 얘기를 나누며 함께 웃긴했는데~ 제 마음 한 켠은 참 씁쓸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참고, 용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추억이 있어야 하고, 이런 모습을 지녀야 합 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다투고, 비난하고, 뒤에서 수근 거리고, 작은 것에도 용납 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어찌 세상과 다르다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세상과 달라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예수님의 성 품으로 서로 교제하며, 하나되는 것이 교회 아닐까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5-27 13:00:46   조회 : 119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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