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영상

2017년 6월11일 주일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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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4장17-24절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를 읽어보셨을 겁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난 두 소년, 서로 많이 닮았지만 한 명은 왕자였고, 한 명은 거지였습니다.

    거지로 살던 톰은 왕궁의 삶을 동경하고 애드워드는 왕자이지만 왕궁밖에 삶을 동경하며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소년이 우연히 만나 옷을 바꿔있게 되면서 뒤 바뀐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날... 거지가 된 왕자는 옥쇄의 위치를 정확하게 말함으로 다시 왕자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 이후 거지였던 에드워드 튜더는 ‘자비’로운 왕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쓴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겉모습, 즉 계급이나 보여지는 모습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거지’였던 소년이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거지처럼(거지를 비하하고자 함은 아님)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들, 그저 추악한 죄인이지만 예수그리스도로 옷입은 후, 하나님의 자녀 왕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다른 옷을 입은 순간 한 소년이 거지에서 ‘왕자’가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그리스도로 옷입는 순간 우리의 지위가 달라지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절에 보면 놀라운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로워 지라는 명령이 아닌 ‘입으라’)

    여기서 ‘입으라’는 단어는 ‘엔뒤오’ 라는 단어인데요.

    어원적으로 보면 in + sink 두 단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졌어요안으로 가라앉다, ~안으로 스며들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서 입으라는 뜻은 ‘옷 입는 것’을 말하는데요.

    옷으로 완전히 가려지는 것, 숨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이런 표현들은 참 놀랍게 여겨집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우리의 신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성경에 보면 성도들과 연관시켜 ‘옷’에 관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계시록에 보면, 성도들은 하얀 세마포 옷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세상과 다른 ‘거룩한 행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3:12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로마서 13:14에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켜 “예수그리스도로 옷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표현이 너무 중요합니다.

    옷이라는 말이 성경의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인데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후에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죽 옷’은 바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행실로, 자기 능력으로,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내 노력, 행실, 공로, 명예, 능력...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선다고 나의 죄가 가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덧입고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서 소유했던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학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선행을 했는가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 공로나 명예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시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서 피흘리기까지.. 순종하셨던 예수그리스도... 사랑하는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 그 보혈을

    입고 있는 우리를 보시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예수그리스도의 그 피묻은 모습을 보실 때,심판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싸~악 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행하심은 얼마나 선하고 공의로운데...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한 행실을 자랑할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측량 할수도 없고, 무한한데... 그 앞에서 나 이 세상에서 이런 능력가지고 이런 일 했습니다.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의 지식은 우주 만물을 만드신 분인데, 그 앞에서 나는 이런 학교, 이런 지식을 가졌다고 자랑할 사람이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만은 꼭 기억합시다. 내 어떤 노력으로도 내 능력과 신분, 지식 이런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피, 그 보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옷입을 때... 하나님의 자녀, 왕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17-19절까지 보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옷입은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말씀에 보면 벗어버려야 할 모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벗어야 할 옷,

    버려야 할 세상의 찌꺼기들이 발견되고 다시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이방인의 모습이 무엇인가? (이방인 :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던 상태, 구원에 외인)

     

    먼저 17절에서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과 같이 행하지 말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먼저 ‘허망함’을 벗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망’이라는 것은 삶의 의미나 목적이 분명치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허망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텅 빈’것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노력한 것이 허사와 같은 것...)

     

    예전에 삼성에 다니는 한 남자 성도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핸드폰 연구원)

    그런데 그 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목사님, 저는 참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삼성이라는 기업에 다녔고, 그 중에서도 잘 나가는 핸드폰을 만드는 연구원이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만들면서 그 전에 내가 만든 기술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토록 잘 잠 못자가면서 만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전문지식이 떨어지니까~ 폐품취급을 당하게 되고 회사에서도 쫓겨나게 되니까~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성도와 얘기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남은 것이라고는 ‘허망’함 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갖았을 뿐만 아니라, 후궁만도 수백명에 달했던 솔로몬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 고백했던 말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다’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공허’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이런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고, 권력의 끝까지 올라갔는데 남는 것이 무엇이냐 말이에요. 우리나라 대통령들을 다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 권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적들을 밟고 올라갑니까? 그런데 마지막에 남는 것이 뭐에요.

    세상적인 즐거움, 쾌락..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을 떠난 성공, 명예, 즐거움... 그 끝은 다 ‘허망함’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모두가 다 그렇게 사니까 똑같이 사는 거에요.

    마음이 허망하면, 속이 텅 빈 진공청소기처럼 아무 것이나 빨아 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좋다는 것에 끌려다니고, 허무에 빠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마음에 안정이 없으니 늘 불안하고, 심지가 굳지 못하니 환경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파도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내 삶에 새로운 의미와 목표를 발견하셨습니까?

    오늘도 내가 숨 쉬는 이유, 내가 먹어야 하는 이유,

    하루 하루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아직 내 중심을 잡지 못했다면 다시 예수님 앞에 나와 삶의 의미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사도바울은 옛사람의 벗어 버러야 할 모습을

    18절에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졌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삶은 총명이 어두워진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각이 없기 때문에,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져 버린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세상에 관한 지식은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세상에서 인정받으며 살지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기 때문에

    그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삶을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인생은 ‘어둠’ 속에 헤매 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지식을 습득하면 습득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어둠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지식, 이성, 학문이라는 것이 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하나님의 탄식이 나오는데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인생은 ‘망하는 인생’이라고 말씀합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지식이 필요한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하나님께서 나를 왜 지으셨는지,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세상 사는데 필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지식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생사가 걸린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은 마음이 굳어져 있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는 상태는 ‘강팍함’‘완악함’을 말합니다.

    내 아집, 내 생각, 내 경험... 내 주장이 내 마음을 견고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간혹, 믿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선과 악’ ‘행복, 불행’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확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해도 전혀 그 마음에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뭔가 단단한 벽 앞에 서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강팍함은 때론 믿지 않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들의 강팍함은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을 수없이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마음의 강팍함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 속에 자아라는 두꺼운 껍질이 마음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말씀의 빛이 들어갈 수 없고, 은혜의 단비도 스며들지 못할 굳어버린 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주장과 아집을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은 아직도 생각과 생활 속에 옛 사람이 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계획과 꿈을 펼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신앙이기보다 자기 성취욕일 뿐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싸움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말씀 앞에 내 생각과 아집, 그리고 감정, 지식을 내려놓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는 그 한 마디에 우리는 무릎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에게 붙어 있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또 19절을 보면 우리가 버려야 할 모습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

     

    이것은 마음이 무감각해 짐으로 점점 더 방탕함에 치우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처음 범할 때에는 떨리고 무섭고 긴장이 되지만, 반복해서 범하다 보면 중독이 되고 대담해 집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죄에 대해 무디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옛날 영화를 보면, 현실감이 떨어져요.

    폭력물이라든지, 아니면 성인영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요즘 나오는 영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화에 나오는 폭력 장면들을 보면... 너무 끔찍해요.

    그런 것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는지 우리는 잘 몰라요.

    옛날에는 TV를 보면 뽀뽀하는 장면 같은 것은 카메라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장면을 바꿔요.

    그런데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키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이런 영화, 드라마, 게임들을 수없이 접하다 보면 우리의 감정이 무뎌지는 겁니다.

    벌레가 밟혀 죽은 것이나 닭잡는 것만 봐도 눈을 찌푸리던 아이들이, 요즘에는 영화와 TV에서 살인 장면을 하도 많이 봐서, 피를 봐도 놀라지도 않아요.

    이제는 우리 눈에 웬만한 폭력이나 음란 장면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게 보잖아요.

     

    이것이 바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감각이 무뎌지면 방탕과 음란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에이즈 이상으로 문둥병이 왜 그렇게 무서운 질병인줄 아십니까?

    한센병은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병을 말합니다.

    뜨거운 것을 만져도 뜨겁지 않고, 피를 흘려도 아프지 않는 거에요.

    뜨거움을 느껴야 손을 피하고, 아픈 것을 느껴야 치료하게 되는데 감각이 없으니 결국 손가락이 망가지고, 썩어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무뎌 지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얼마나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지 몰라요.

    다른 사람을 속이고 사기치면서도 얼마나 떳떳하게 하는지 몰라요.

    여러분의 마음이, 감정이 혹시 이렇진 않으십니까?

    예배에 빠지게 되면 가슴이 두근 거리고, 뭔지 모를 두려움이 생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예배에 나오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아도.. 말씀을 읽지 않아도...

    별 두려움도 없고, 떨림도 없어지고~

    그렇다면 두려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가장 큰 형벌은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겁니다.

     

    내가 죄를 지을 때, 바로 치셔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내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하시는데~

    더 이상 내 마음에 그런 두려움이 사라지고 걱정도 없어졌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큰 형벌입니다.

     

    교회를 가르켜 왜 한 몸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몸에 한 곳이 병들고 아프면 온 몸이 아프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 빠지면 함께 걱정하고 근심하고 관심을 가지고 붙들어줘야 하고,

    어떤 성도가 질병의 문제로 아파하면 함께 아파하면서 기도하고 섬겨주고,

    어떤 성도가 실족하면 함께 격려하면서 세워가는 것이 ‘교회’인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가 다른 성도들의 삶에 관심이 없어요.

    왜 예배에 빠졌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지..

    지금 삶의 어떤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지~

    기도하지 않으면 왜 기도하지 못하는지~

     

    교회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인 문둥병에 걸린 것과 다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0-24절까지 보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새롭게 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절에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와 같이 배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22절에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지금까지 말한 허망함과 하나님을 멀리한 것, 그리고 감각없는 자처럼 행하던 것들을 벗어버리고

     

    23-24절을 보면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말하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데요.

    여기서 말하는 ‘의’와 ‘진리’가 무엇일까요?

    의는 믿음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의로움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내 노력이나 행위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참 메시야와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그 믿음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 질 뿐만 아니라 우리는 거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통해 주시는 믿음,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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